짧게 수험 생활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한국교원대 미술교육과 13학번 재학생이며(*글 쓴 당시 15년도) 2013학년도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와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합격생이기도 하다. 미술 교사에 대한 꿈을 품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이고, 한국교원대 미술교육과를 희망한 것 역시 중학교 3학년 때부터다. 일찍 진로를 결정해 전략적으로 성적과 실기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고 목표가 확고했으므로 수시 전형은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중3 때부터 목표는 ‘한국교원대, 홍익대, 국민대 정시 합격’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다.
하지만 수험생활을 묻는다면 그냥 구정물 같은 4년이었다. 결과가 좋았으니 그나마 기억이 희석된 거지, 사실 좀 불행했다. 아무리 의지가 충만하고 꿈이 있어도 그 과정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기억 속의 나는 공부벌레 같은 학생이었지만 천성적으로 게을렀다. 게으른 애가 꾸준히 공부하고 그림 그리니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수험 생활을 견뎠나 싶다. 버스를 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영어 단어장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저녁 시간, 야자 시간, 자투리 시간 모든 시간이 공부 아니면 그림이었다. 시간이 없어 수업 끝나고 미술학원 가는 길에 김밥을 먹는 건 비참했다. 누군가 “유별나게 공부하는 애들 이해가 안 된다”며 부러 소리 내어 지나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 선생님이 예체능 학생들을 무시하는 것도, 학원 선생님께 못 그린다고 꾸중받으면 억지로 눈물을 참는 것도. 워낙 일상이라 금방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런 기억들은 지금도 썩 좋진 않다. 그립긴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기인 것이다.
그런 감정적인 요소를 제하면, 나의 수험생활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교원대 미술교육과 정시 전형은 수능 40, 내신 20, 실기 30, 면접 10의 비율이었다.(지금은 학생부를 반영하지 않는다.) 내신은 점수 차가 별로 나지 않긴 했지만 가장 우수한 한 학기 성적을 내면 되어서 전 과목 1등급을 맞출 수 있었고, 수능은 백분위 97퍼센트가 나와서 안정적이었다. 실기는 고1 3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학원을 다니며 3학년 때는 차츰 빈도를 늘리며 준비했다. 면접은 내 꿈을 소신껏 말하기만 하면 되어서 어렵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원서 마감 전 날까지 학교를 바꾸는 다이나믹한 수험 생활에 비하면 이런 나의 경험은 너무 수월했다고까지 생각될 정도로 평탄하다. 이런 ‘쉬운’ 수험 생활이 가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공부 습관이다. 물론 미술교사가 되고 싶다는 열의 덕분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요구하는 노력은 그 불확실성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어마어마하다. 장기간 레이스를 지치지 않고 달리기 위해선 꿈을 생각하기 보단 그냥 달리는 게 숨 쉬듯 당연한 일이 되어야 했다. 물론 숨이 찰 때는 꿈을 생각하며 참아내기도 하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현재의 입시 전형은 내가 치른 수능과 사뭇 다르기 때문에 현재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질문에는 잘 대답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공부의 핵심은 그저 많이 익히는 것이며 내 주된 공부 방법은 ‘다독’이다. 언어의 기술은 7회독 정도 읽고 풀었고, 이외의 언어 참고서들도 마찬가지다. 회독을 끝낼 때마다 체크 표시가 늘어나는 게 팍팍한 수험생활 중의 재미였다. 언어의 기술은 정말 좋은 책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국어에 재능이 있었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 덕분에 언어 영역은 대부분 1, 2등급을 찍었지만 가끔씩 실수하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내가 감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수 없이 정답을 찾아가는 실질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외국어는 김기훈 선생님의 ‘피니싱터치’와 ‘어휘끝’을 외우고 또 외웠다. 강사 선생님의 카리스마는 가슴에 불을 지펴주어 인생에 대한 생각도 종종 할 수 있었다. 적중률이 나빴다고 원성이 있었던 거 같은데, 나는 적중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 평소 모의고사보다도 잘 치른 편이다.
사탐은 과목당 수능특강을 두 권씩 구입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풀었다. 한 권은 풀이집을 참고해 모든 문제에 빡빡하게 해설을 써놓고 틈날 때마다 읽었으며, 한 권은 연필로 연하게 풀고 지우며 틀린 문제에만 형광펜으로 체크를 해 반복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언어와 외국어 역시 수능특강, 수능완성 등의 EBS 교재 지문에 익숙해지기 위해 여러 번 훑어 읽었다. 다양한 책을 보기보단 한 권이라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방법은 아무리 시험 유형이 변해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고3이었던 2012년도만 해도 수시 비중이 계속 늘던 추세라 정시에만 올인하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지만 수시를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건, 1지망인 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 입시가 정시로만 진행되었기 때문이고, 홍익대나 국민대는 비실기 전형이니까(수능 성적만 제대로 챙기면 되니까) 부담이 없었다. 홍익대학교의 경우 미술활동보고서라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또 있었는데 고등학생 때 미술 쪽으론 꼼지락꼼지락 뭔갈 해대서 생각보다 쓸 거리가 있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교내 대회에선 색채 심리 쪽으로 모의 논문을 써서 입상하기도 했다. 다만 나 때는 EBS 연계 비중이 상당히 높았기에 나 같은 공부벌레에게는 수능이 그렇게 못 넘을 산도 아니었고, 예체능 학생이 많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녀 선생님들이 미대 입시생을 이해해주는 것도 있어서 그냥 환경이 딱 적당했다. 거창한 전략도 아니었지만, 자기 입시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가 머릿 속에 있는 게 가장 큰 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입시생들은 수만휘나 블로그에서 몇 등급이면 갈 수 있는지 찾지 말고 직접 대학교 입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제대로 숙지하고 전략을 세웠으면 좋겠다.
(잠깐 딴 길로 새자면, 미대 입시생도 그냥 인문계 다니는 게 속 편하다고 추천하고 싶다. 괜찮은 미대들은 수능 성적을 보기 때문이다. 주변에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야 본인도 공부를 한다. 수험 생활의 3분의 1은 멘탈이 좌우하는데, 예고 다니면 대부분 실기능력은 우수하니 자기 능력에 대해 끊임없는 자괴감을 느끼기 쉽다. 그리고 예고가 인문계만큼 공부하는 분위기는 아니니 수능 공부를 하기에 좋은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수능 성적에 대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탐만큼은 정말 고등학교 선생님의 수업에 충실히 의존했다. 미대 입시가 아니더라도 같은 맥락으로 공부 잘하는 특목고는 웬만하면 반대한다. 일반 인문계였으면 전교 1등 하고 자존감 풀로 채웠을 애들이 자존감 밑바닥 돼서 질질 짜는 경우 또한 좀 보았다. 그리고 졸업하면 이상한 특권의식이나 피해의식이 생겨있을 확률도 있다. 그 예민한 시기에 기숙사 생활이 집보다 안정적인 환경일까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잠깐 언급했지만 미술학원은 평균보단 적게 다닌 편이다. 고1 땐 주말 하루만 다니고, 고2 땐 평일 하루, 주말 하루를 나가기 시작하다가 학원 비율을 세 번인가로 늘렸다. 그리고 고3 때 다시 한 두번으로 줄였다. 물론 방학 땐 횟수를 훨씬 늘렸지만, 이것도 세 타임까진 아니고 오후부터 두 타임씩 다녔다. 미술학원 안 다니는 날은 11시까지 야자하고, 미술학원 다니는 날은 7교시 끝나고 바로 학원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니 나보다 늦게 미술 시작한 친구도 미대 입시 시즌엔 나보단 훨씬 잘 그리더라.
나는 고3보단 고2 때 성적 스트레스를 훨씬 많이 받은 편이다. ‘내년이 바로 수능을 보는 해’라는 비장한 의식이 있어서인지 바로 위 학년의 수능일이 하루씩 다가올 때마다 괜히 내가 고3인 것처럼 심적 부담을 느꼈다. 고3처럼 공부하려고 애썼고 고3처럼 느꼈다. 그렇게 하고나니 오히려 고3 땐 수능 한 번 겪은 재수생 같은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이미 겪어본 부담감이라 그런지 엄청 무겁지도 않았다. 해왔던 대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고 수능 당일에는 괜히 신이 나서 ‘끝장낸다’는 마음으로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다. 지나치게 집중했는지 수능이 끝나자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여 그날 밤은 응급실에 누워서 보내야 했지만, 본인 스스로가 너무 대견해 울었던 기억은 훈장처럼 잊히지 않는다.
나의 수험생활은 꾸준히 하는 것이 힘들 뿐 경로 자체는 쉬운 편이었다. 누구라도 중3 때 원하는 학과를 설정하고, 그 전형만 바라보고 내내 공부한다면 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냥 대학이 요구하는 걸 3년 동안 맞춰주려고 애쓰면 된다. 내 성적은 미대 입시생치곤 좋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수채화는 솔직하게 지금도 자신 없다. 대신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무던히 인내하고 노력한 나의 시간에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 시간의 끝에, 겨우 꿈을 향한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 출발선이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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