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사 2년 차가 대여섯 명의 학생들과 함께 준비했던 학예전을 뒤늦게 정리하려 한다. 학교마다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매년 12월에 학교 축제가 있는데, 격년으로 발표회(음악)와 전시회(미술)를 번갈아 운영한다. 2019년 학예전은 1년 간의 학생 미술작품 및 자유학기제, 교과 활동 결과물을 한 데 모아 전시하는 자리였다. 단 3일간의 전시 기간이었지만 그를 준비하기 위해 갈려진 교사와 도우미 학생들의 노동 시간은 25시간 이상 되지 않았나 짐작한다. 겨우 5시간의 봉사 시간과 야식 따위 밖에 줄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던 시간이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멋지다 잘했다 하겠지만 노동 중심, 결과 중심적인 학예전 성격의 축제는 이제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듯 하다.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거대한 연말 전시보단 소소한 일상 속 전시의 교육적 효과가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래로는 나와 우리 아이들의 노동의 산물이다.
도서실 하나가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9개의 책상을 양쪽 벽으로 밀어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책상 위와 전시공간 가운데에 메쉬망을 설치하여 작품을 부착할 수 있는 벽면을 늘렸다. 복도에는 이젤을 죽 깔아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사진 및 백일장 시상작을 전시했으며, 창가에는 메쉬망을 올려 미술 교과의 평면 작품을 주로 전시했다. 알파벳 풍선, 가랜드, 허니컴볼을 활용하여 장식적 효과, 재미를 더하고자 했다.
학예전의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학생들이 어떤 교육 활동을 했는지 직관적이고 전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미술교사로서 미술 교과의 다양한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다른 교과와 동아리 활동을 볼 수 있단 점도 매우 놀랍고 즐거웠다. 교과 특성과 선생님들의 교육적 방향, 아이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다양한 결과물은은 학교 구성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전시회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는 미술 작품이다. 신규 2년 차의 피땀 눈물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서로 다른 개성과 창의성이 각양각색으로 피어났다.
방과후수업과 동아리 활동은 주로 인물 표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오일 파스텔, 색연필이 주로 활용되었다. 사실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보통 먹지를 활용해 베껴 그리는 작업이 선행되었으나, 묘사에 능숙한 동아리 부원들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형태를 살리고 다양한 색채 표현에 도전했다.
3학년 대상으로 진행한 시각문화 패러디 수업은 단순하게 기존 광고의 일부 요소를 패러디하는 활동이었는데, 학생들에게 다소 어려웠던 것 같다. 자신이 광고하고 싶은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을 잡지에서 오려낸 뒤 기존의 시각문화(광고, 인터넷 짤방 등) 형식에 맞게 패러디했다.
마찬가지로 3학년 작품이다. 문자도에 담긴 다양한 민화적 요소와 의미에 대해 조사하고 학습한 뒤, 자신이 바라는 삶에 어울리는 민화적 요소를 문자 형태에 맞게 구성하는 활동이다. 학생들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알 수 있고, 학생들도 자기 이름과 의미를 연결 짓는 과정에서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건 재작년 1학년 작품이다. 신규 때 수업했던 QR코드 디자인인데, 휴대폰으로 작품 속 QR코드를 인식하면 학생들이 만들거나 지정한 홈페이지가 나온다. QR코드를 제작하는 과정부터 인쇄물을 나눠주는 것까지 교사에겐 정말 힘든 활동이었는데,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결과물이 매우 다양하고 미적으로도 아름다워서 애정이 많이 갔다. 잘한 거 정말 많은데 메쉬망이 작아서 일부만 추렸다. 교원대 선배 선생님의 수업을 공유받아 진행한 수업이다.
1학년 대상으로 조형요소와 원리를 익히기 위해 한 수업이다. 저마다 다른 시 구절에 어울리는 점, 선, 색을 선택하고 간단한 수채화 그라데이션을 연습하여 시화처럼 꾸몄다. 이 작업이 정말 뿌듯했던 게, 수채화 기법을 익히고 나니 아이들이 다른 교과 활동에서도 그라데이션 등을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화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감성이 참 예뻤다.
사춘기 2학년에게 적합한 감정 자화상 활동이다. 얼굴 부분은 점묘화 방식으로, 배경은 학생들이 좋아하거나 의미있는 이미지를 그려 넣게 했다. (이 수업 역시 교원대 선배님의 수업을 공유받아한 것이다.) 감정에 어울리는 색의 색지를 활용하고, 배경의 직선, 곡선 등을 통해서도 감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지도했다. 자기 얼굴을 그리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학생이 많지만, 자화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동시에 마주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수업이다.
자유학기제 가면 디자인 활동이다. 조건을 따로 주진 않았는데, 최대한 설정한 주제에 맞는 이미지를 표현할 것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눈 부분을 없애 자유로운 캔버스처럼 활용한 학생도 있었고, 따로 조명을 준비해와서 시각적 효과를 살린 학생도 있었다.
학교에 3D펜이 많아서 3학년 대상으로 드림캐처를 만드는 수업을 했다. 3D펜의 특성 상, 덩어리가 있는 형태는 초보들이 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입체성이 덜한 드림캐처를 만들었다. 드림캐처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 도안만 주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알아서 디자인하고, 구슬과 깃털도 원하는 컨셉에 맞게 장식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중등미술교육 연구회 연수에서 이혜진 선생님께 배운 메이커 수업 사례를 그대로 시도했다. (코로나 끝나면 연수 또 가고 싶다. 부산 미술 선생님들께는 배울 점이 항상 많다.)
현대 풍속화 역시 교원대 미술교육과 선배 선생님이 공유해주신 수업을 시도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현대 사회 또는 일상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뽑아오거나 스케치를 먼저 하라고 한 뒤 한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 물감으로 살살 색칠했다. 전시할 작품만 골라서 우드락에 접착 스프레이를 뿌려 내구성을 높인 뒤 전시했다. 줄에 매달아 전시하는 방법은 도우미 학생의 아이디어였다. 덕분에 애매했던 전시 공간을 충분히 아름답게 활용할 수 있었다.
입체작품은 복도에 전시하기 어려워 도서실 안에 배치했다. 면봉 입체 구조물은 면봉으로 선재 구성을 하고 주제에 어울리는 색을 칠한 것이다. 손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테이프로 손을 본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들인데 2학년 각반의 협동 작품이다. 이외에 교과 교실에 어울리는 간판이 전시되었다.
제대로 크게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잘 찍어놓은 작품이 얼마 없어 아쉽다. 아동 학대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모니터 안에는 상처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협동 작품이다. 2학년 3반 학생들이 악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만든 작품이다. (키보드 동글동글해서 귀여운데 잘 안 보이네..)
음악을 표현했던 2학년 1반 협동 작품의 일부. 테이프 위에 수채 물감을 두껍게 칠했다. 일반적인 손의 색이 아닌, 주제에 어울리는 색과 형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들이 많은 고민을 했다.
작품은 더 있지만 도서실 내부 작품까지 다루기엔 양이 많아서 여기서 줄인다. 내부 작품은 다음 게시물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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