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 중학교 미술수업/문자도/이름문자도/효제문자도/민화/도상

매년 잘 써먹고 있는 이름 문자도 수업.
보통 3학년 2학기엔 전통 미술을 테마로 민화를 가르친다. '한국적인 것이 제일 세계적이여'란 생각도 있고, 고등학교 올려 보내기 전 가장 기초적인 감상 수업은 해서 보내야겠단 조급함도 있다.
전통 미술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바로 문자도. 자기를 탐색하고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소재라서 그렇다. 전통 미술에 어떤 의미와 가치가 담겨있는지 이해하고, 나아가 내 이름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담을 것인지 탐색하게 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특성과 취향을 발견할 때가 좋다.

문자도는 글자 의미와 관련있는 내용을 서체 안에 그려 넣어 꾸민 그림으로, '효제충신 예의염치'라는 유교의 여덟 가지 덕목을 담은 '효제 문자도'가 대표적이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중국의 효자가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에 빙판을 깨 잉어를 고아드렸다든가, 밤새 부채질을 해줬다든가, 귤을 소매 속에 숨겨갔다든가.. 여기서 잉어, 부채, 귤 등이 '효'를 상징하는 도상이다. 도상은 약속된 이미지다. '앞으로 효 표현하고 싶을 때는 잉어 그리기다' 하고 약속한 것이다. 효뿐 아니라 우애(제), 충성심, 믿음, 예절, 의로움, 청렴,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치) 각 글자에 관한 설화가 있고, 그 설화에서 비롯된 도상이 있다. 이야기는 너무 예스럽고 시대에 맞지 않아 강조할 거리는 아니다만, 여덟 가지 가치관은 현대에도 중요한 가치이기에 아이들에게 스스로 묻도록 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내 이름에 이 가치관 중 두어 가지를 넣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효제문자도가 가치관을 담는다면 백성들이 향유한 민화는 소망을 담는다. 현대인들의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위시 리스트에는 장수, 화목한 가정, 액운을 물리침, 다산, 부귀가 있다. 민화 속 도상은 효제 문자도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소나무가 오래도록 푸르니까, 해와 구름과 물은 변치 않으니까 장수를 상징하는 식이다. 알알이 씨나 알이 많은 석류와 연꽃은 자연스럽게 많은 자손을 상징한다. 이런 도상들을 가지고 이름 문자도에 넣을 만한, 나를 상징할 수 있는 소망을 찾는다. 아이들의 원픽은 단연 행복한 가정이다. 부귀는 예상 외로 2위다.

동기유발에는 손동현 작가의 문자도를 제시한다. 손동현 작가는 현대의 브랜드 로고를 문자도 형식으로 꾸미는데, 이 안에는 전통적인 도상과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섞여 있다.

https://youtu.be/JrGmShs0exw
MMCA 작가와의 대화/손동현 작가 8:00~9:30

전통적인데 힙하다. 뇌리에 콱 박힌 어릴 때의 감상이 지금 와서 학교 수업으로 이어지는 것도 신기.

전통적인 도상을 답습만 하는 것은 재미없으므로, 나 ○○○를 상징할 수 있는 독자적인 도상 또한 창작하도록 한다. 언제나 시작은 마인드맵. 내 취미, 취향, 닮은 것, 좋아하는 종류를 써내려 가며 날 상징하는 소재를 찾는다. 그중 시각화하기 좋은 단어 몇 개를 골라내면 아이디어 스케치할 준비가 다 되었다. 조건은 두 가지다. 가치관이나 소망을 상징하는 전통 도상 두 개 이상, 나를 상징하는 개인적 도상 세 개 이상 활용해 이름 획을 채우는 것이다. 조형적으로는 글자 획과 이미지 간의 여백이 자연스러워야 하고, 재료를 능숙하게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게 수업했던 작품들이 벌써 이만큼 쌓였다.

시범작으로 나도 문자도를 그려봤는데, 제일 좋았던 건 결과물이 아닌 생각할 기회. 내 소망에는 노후의 안락이 있어 갈대와 기러기를 그렸다. 갈대와 기러기는 갈대 '노'와 기러기 '안'이 만나 '노'후의 '안'락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생각만 하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꽤 크다. 이름 문자도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자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자기 이름에 직접 담은 가치관과 소망대로, 자기 개성대로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