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 - 천아름 《식목일기》展
원래 목적지는 고은사진미술관이었다. 근데 도착하자마자 들은 말은 "오늘은 아티스트토크 날이어서 예약자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는 거였다. 다행히 바로 맞은 편에 프랑스문화원이 있었고 이것도 함께 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바로 입장했다.
프랑스문화원의 작은 사이즈는 작가의 방에 살짝 들어온 것 같은 친밀한 느낌이 들게 했다. 전시 제목은 《식목일기》. 천아름 작가는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키우는 사람(작가)의 모습을 무성하게 자라는 식물에 비유했다. 식물의 형상을 한 머리카락은 화분에서 조그맣게 자라는 새싹이기도 하고, 무표정한 사람의 머리 위에서 마구 줄기를 뻗어대는 꽃이기도, 웅장하게 자라 붉은 열매를 맺은 거목이기도 하다. '생각만으로는 우주 정복도 했겠다, 멍청아!'라고 외치는 것 같은 작품들을 보며 나도 그렇다며 맞장구를 치다가, 이러한 생각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성실하게 작업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겸연쩍고 웃겼다. 똑같이 나무를 키운 줄 알았더니 누구는 작품을 남기고 누구는 감상을 하고 있군요.
하나의 이미지를 이루는 제각기 다른 크기의 작품들이 원래의 이미지에 맞게 서로 다른 높이에 배치되어 있었고, 벽면에는 흩날리는 꽃잎을 연상시키는 오브제가 붙어있었다. 이게 아마 <붉은 비 나무+알파>였던 거 같다. 나는 스케일 큰 건 웬만하면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도 좋았다. 캔버스 하나가 작품이 아니라 설치된 공간이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또 마음에 들었던 건 <수생식물>이다. 위아래 길게 뻗는 화면 너무 좋다. 욕조 안에서 생각에 잠긴 인간, 그의 머리카락은 위로 끝없이 뻗어 잔가지가 많은 나무가 되었고, 새들은 그 꼭대기에 유유자적 앉는다. 생각이 얼마나 많이 쌓였으면 손님까지 찾아오나. 샤워할 때 내 머리카락은 길이가 어떻게 됐더라.
작품에 무리한 힘이 안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명작을 완성하겠어!' 같은 집념 보단 그림 일기 같이 부담 없는 느낌이 든 건 그림 속 연한 문장들 때문이었을 거다. 태생이 생각이 많은 사람이 있다든가, 남들이 나무를 등에 올리기 때문에 흉내낸다는 메시지들은 뭔가 나도 이렇게 느낀 적이 있는 것 같아 감히(..) 작가와 내가 비슷한 사람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이런 생각들을 내가 키워도 되나?', '왜 생각은 밤에도 끊임없이(어쩌면 더욱 격렬하게) 자라는가?'. 자신의 생각 나무에 대한 작가의 단상들이 딱 그에 맞는 이미지로 탄생한 게 신기했다. 이 테마를 가지고 작가의 그림책이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림도 아기자기한데 생각들도 너무 재치있으니 이들을 한 스토리 안에서 엮은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림책엔 삽화가 많아야 하니까, 작가의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울아트스페이스 - 김덕기 《푸른 다뉴브 강의 왈츠》展
알고 간 곳은 아닌데 버스로 이동하기 직전에 건너편 건물에 '아트 스페이스'가 크게 적혀 있길래 유턴했다. 전시장 내부에는 동일 제목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인상주의 같기도 하고, 표현주의 같기도 하고. 수많은 색점들이 알록달록 화려한 풍경화를 구성하고 있었다. 과감하지만 조화로운 원색의 구성이 작품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저 풍경화이기만 했으면 예쁘긴 하지만 흥미는 없었을텐데, 그 안에 사람이 있어서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곳곳에 작은 보석 같이 박혀 있는 작가의 가족은 자전거도 타고, 배도 타고, 손도 흔들며 풍경 속에서 생동하고 있었다. 풍경 속에 가족이 있어서 비로소 진정 아름답다는 느낌. 작가가 무엇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지향하는지 와닿았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서기환 교수님의 작품도 떠올랐다.)
작가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어서 잠깐 앉아서 감상했는데, 알고 보니 전직 미술교사였길래 반가움을 느꼈다(감히 느끼면 안 될 거 같은데 느껴버렸다). 되게 조곤조곤 인생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분위기가 참 평화롭고 따뜻하더라. 영상 속에는 작가의 집과 고향이 나왔는데, 꿈 같은 서양 풍경화를 보다가 친근한 한국 시골길을 보니 현실감이 확 들었다. 적막한 시골길도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풍경이 되는거겠지 싶다.
김덕기 작가의 작품은 '말해 뭐해 입만 아프지'로 감상을 대신하련다. 그 강렬한 색감들, 아기자기하고 순수한 행복의 풍경은 엄청 예쁘다. 그 생생한 색과 터치감은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다. 이번 전시만을 담은 도록이 있으면 사고 싶었는데 없어서 아쉬웠지만, 다른 도록들을 보니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원작 느낌이 전달되지 않더라. 그렇다고 작품을 살 수는 없었다. 난 팔 집도 없으니깐... 다음 개인전이 있다면 또 가고 싶다.
-2019.4.2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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