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찍는 게 좋다. 무턱대고 부딪혀서, 생채기처럼 남은 점 사이를 잇는 것이 좋다.
이번 점은 '수업나눔' 이었다.
작년 코스페이시스를 열심히 만지며 나온 미술 수업을 남들 보기 편하게 다듬어 내놓았다.
아이들의 활동 모습은 함부로 올릴 수 없지만, 앞서 올린 설명이 어느 정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한다.
2022.05.30 - [학교현장] - 2022-1 코스페이시스 방탈출로 즐기는 미술수업! 칸딘스키 이해하기
수업나눔 신청은 대책 없었다. 그저 묻히는 게 아까워서, 여느 공개 수업처럼 실시간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단순하고 가벼운 맘으로 클릭.
알고 보니 실시간이 아니라 미리 수업 녹화하고 편집하고, 그와 관련한 교육과정 및 평가 설계, 활용한 프로그램, 피드백과 QnA를 약 1시간 30분가량 떠들어야 하는 본격적인 '발표'에 가까웠다.
멋모르고 신청하면서 일자는 또 왜 이리 빠르게 잡았는지(3번).
암만 매 맞는 게 좋아 앞장서는 스타일이어도 그렇지, 예상치 못한 학사 일정으로 수업 빵꾸가 나면서 계획보다 훨씬 다급하게 녹화해야 했다.
약간은 천진한 맘으로 남들 영상을 열어보니, 생각 외로 보기 좋게 뽑아놨길래 질 수 없어서
절친한 동기들에게 미리 피드백과 QnA를 수집하고, 밤새워 영상과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대망의 금요일. 준비하고 대비한 만큼, 매우 수월하게 수업나눔을 마무리했다.
1시간 30분 중 30분이 수업 영상, 10분이 체험이라면 나머지는 순수하게 입으로 때우는 시간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떠드는 건 익숙해도 어른들 앞에서(그것도 동 교과 선배교사 앞에서) 떠들려니 긴장되더라.
그래서 각 잡고 목차 정하고 PPT를 다듬었다. 단어 위주로 시원시원하게 뽑아내려고 했다.
1. 기획 의도, 수업 설계, 교육과정 재구성, 수업 설계
2. 수업영상 재생
3. 활용 프로그램 소개
4. Qna, 피드백, 자기성찰
코스페이시스 방탈출 제작법을 궁금해할 거란 생각도 들었으나, 수업나눔의 본질에 집중하고 싶었다.
태블릿PC는 재료에 불과하다. 요리 안내서에 재료 분석이 주를 이루는 건 본래 의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나눔을 구성할 때도 수업 설계와 평가 위주로 이야기하려 했다.
비대면 수업나눔 시 실시간 반응이 적다고 들어서 절친한 동기 몇에게 영상을 공유하고 질문 및 피드백을 부탁했다.
그리고 쏟아진 무수한 자료들, 내 손에 쥐어진 황금 피드백!
이 정도로 돌아올 줄은 상상 못 했다.
각 잡고 분석해서 표로 보내주고, 추상회화 관련 교과서 자료 왕창 뿌려주고, 질문을 20개씩 피드백을 10개씩 보내주는 게
보통이 아니구나. 얘네는 '진짜'구나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미술교사지만... 찐 열정부자들.
자기 일도 아니니 대충 보고 적당히 좋은 말로 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30분 영상 보는 게 보통 귀찮은 일인가.
보더라도 구체적으로 피드백해줄 의욕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바쁘고 피곤한 세상에.
허를 찌르는 질문을 정성껏 남겨주는 교사가 내 친구여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덕분에 에너지와 자신감을 얻는 것은 물론 수업나눔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그저 평탄하게만 흘러간 건 아니었다.
6교시가 3시 5분에 끝나는데 수업나눔은 3시로 시간이 고정되어 있었기에
켠 지 5분도 안 되어 종 땡 치고 우다다다 뛰어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발망치 타격음이 미술실을 때렸다.
채팅창에는 연구사님의 '발표자를 제외한 선생님은 음소거를 부탁'하는 메시지가 떴다.
그 소리.. 우리 애들 거예요....ㅠㅠ
어찌어찌 소란이 멎고 녹화영상을 내보내자 이번엔 맞은편 음악실 밴드부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다급하게 문을 여니 마침 수업나눔 보조를 맡아준 동료 샘이 주의를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조용히 연습하겠다고 했지만 멈추지는 않았고, 언제 커질지 모르는 리듬감 있는 드럼 소리에 마음은 초조해져 갔다.
다행히 녹화영상 끝날 즈음 밴드부 연습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이번엔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복도를 강타했다.
2학년 한 반의 단합대회였다. 장소가 미술실 인근 복도였을 뿐이다.
예상치 못한 소음을 세 번 맞닥뜨리면서 멘탈이 흔들렸으나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건 동료 교사 덕이었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재깍재깍 주의를 준 옆 자리 보조 친한 동료샘을 비롯하여,
한 분은 미술실 복도 입구에 출입금지 종이를 붙여주셨고, 한 분은 줌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자 복도로 바로 뛰어 올라오셨다고 한다.
수업나눔 참여자 중 같은 학교 샘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줌이 끝나고도, 시간이 여의치 않아 못 들어갔다며 녹화 영상이나 지도안이라도 보고 싶다는 샘들도 계셨다.
스쳐 지나가도 상관없는 그 시간에 관심 갖고 사려 깊은 한 마디 덧붙여 주셔서 힘이 났다.
준비한 것들을 모두 무사히 나누고 마무리 멘트를 할 때엔 절로 웃음이 났다.
실시간 반응은 예상대로 적었지만, 질문 수준을 보면 수업에 진짜 관심 있어서 들어오신 샘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감상평도 뭔가 짧고 굵게 임팩트 있어서 내가 이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시키진 않았단 안도감이 들었다.
일부 화면을 켜주신 샘들의 따뜻한 눈빛에도 다행스러운 맘이었고.
줌이 꺼지자 피곤함이 몰려옴과 동시에 오랜만의 성취감에 참 맘이 후련했다.
비록 방과 후 조용할 수만은 없는 환경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수업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아쉬운 점을 발견, 발전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워낙 열심히 만들었고, 또 워낙 아낌없이 나누었기에 실은 '아깝다'.
더 발전시키고 연구할 주제를 너무 빨리 풀어놓은 건 아닌가,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콘텐츠 하나 만들었다고 안주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오히려 푼 만큼 더 정성껏 수업 개발에 힘을 쓰는 것이 맞다.
피카소가 아직도 전설인 이유는 쉴 새 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조금만 숨을 고르고 새로운 시작에 임해야겠다.
'각종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교사 단점이 궁금해? 미술교사 힘든 점, 미술교사 오해와 진실 (0) | 2022.06.12 |
---|---|
부산 미술임용 2차실기 인체소묘 연습작 (0) | 2019.07.30 |
부산 미술임용 2차 실기 디자인 복기(스케치)(2018년) (0) | 2019.07.30 |
부산 미술임용 재수 합격수기6-드리고 싶은 말씀 (2) | 2019.07.19 |
부산 미술임용 재수 합격수기5-생활과 마음가짐 (1) | 2019.07.19 |
댓글